신치현 Chihyun, Shin


Artist Biography



반대쪽에 있는 진실-신치현의 작품에 대한 단상

글/ 박준헌(미술이론, Art Management Union 대표)


때로 가장 기계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을 떠올리게 한다. 신치현의 작품이 그렇다. 우리에게 그의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과 옹호처럼 보인다. 그 시선은 인간과 삶과 세계를 드러내는 작가가 택한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다. 그 방식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냉철하고 차갑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차가움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윤리와 결합하면 가장 뜨겁게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분만해낸다. 그의 작품은 예술이라는 관념과 인간이라는 존재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팩트는 인간이고 그 인간의 원칙은 현실이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뜨거운 질문에서 비롯돼는 고통과 비명을 감내할 수 있고, 좁혀지지 않는 존재와 의미 사이의 간극을 건널 수 있다.


때로 가장 작은 구조가 가장 넓은 것을 지탱한다. 신치현의 작품이 그렇다. 그에게 세계는 하나의 큰 구조물이다. 그 구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 단위는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이며 그 구조들의 병합과 연횡을 통해 세상은 쌓아지고 기록되어 진다. 그는 그 구조들의 중요성을 밝혀내기 위해 가히 해부학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그 구조들의 질서체계 혹은 하나의 척도를 밝혀내는 데 골몰한다. 작가가 여기서 밝혀낸 것은 구조와 구조는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이며 서로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보이는 현실의 '재현'이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한 '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이 견고한 구조 위에 놓여 있으며 그것의 직접성과 확실성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서로의 세계 속으로는 진입이 불가능 하다. 그래서 우리는 심층과 표면을 동등하게 파악하고 인간에 대한 철학적 신화를 벗어 던져야 만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때로 가장 차가운 것이 가장 따뜻함을 그립게 한다. 신치현의 작품이 그렇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철, 스테인레스, 아크릴 등 산업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부산물들이다. 이러한 재료들로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거의 영구적이라 할만큼 지속성과 보존성을 지닌다. 또한 그 위에 과학적이고 수학에 기반한 계산적인 태도들이 더해진 작품들은 냉철하고 차갑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그것의 극단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어둠이 있어야 밝음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항상 그렇듯 내가 원하는 대답은 진실의 반대쪽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은 이렇듯 역설의 역설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려고 한다. 영구성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깨닫게 하는 것. 고통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것. 그의 작품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때로 가장 작은 질문이 가장 큰 대답을 해준다. 신치현의 작품이 그렇다. 그에게 인간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픽셀(pixel)에 불과한데, 사회는 그러한 망점들의 집적물이고 세계는 그 망점들의 종과 횡이 모여진 드라마이다. 우리의 삶은 그 드라마 속의 하나의 아주 작은 화소(畵素)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거대한 자본은 아름다운 화면으로 시시각각 우리를 욕망하게 하고 소비하게 한다. 

그의 물음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부속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인간을 아름답게 포장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말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인간 혹은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통념이 얼마나 허위적인지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 실증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인간을 명철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통념들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인간을 믿지 않고 연민하지 않을 때 역설적이게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부박한 가식들을 제거하면서 거기에 맞설 수 있는 하나의 인상적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인간적이라 부르는 허위와 아름다움에 대한 통념을 직시하게 한다. 가장 차가운 시선으로 그리고 가장 최소의 단위로. 아울러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장 기계적이고, 가장 작은 질문을 담아 가장 작은 구조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큰 울림으로, 자신의 세계를 재창조 해 내고 있다. 그 세계 안에서 우리는 대상 안에 있는 대상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인간 안에 있는 인간 이상의 것을 사유할 수 있다.

Exhibitions

SOLO EXHIBITIONS


2017     OMIT-1 (군산예술의전당)

2013     Form (Artspace Withartist)

2011     透 (가인갤러리)

2010    사물 (Kring)

2010    화답 (김종영미술관)

2009   Error (표갤러리 서울)

2006   Form (갤러리 우덕)

2005   INVITE (국립고양스튜디오 전시실)

2005   木山-distance (아트포럼 뉴게이트)

2002   10 x 10 (갤러리 사간)

1999    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1996    제1회 개인전 (이십일세기 화랑)

ART FAIRS


2015    청주국제아트페어 (청주 상상마루)

            아시아호텔아트페어(홍콩)

            부산아트쇼(BEXCO,부산)

2014    AHAF SEOUL 2014 (롯데호텔,서울)

2013    대구아트페어 (EXCO,대구)

            ART ROAD 77 아트페어(예술마을 헤이리,파주)

2012    에디션 아트페어 (COEX,서울)

            화랑미술제 (COEX,서울)

2011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아트페어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

           화랑미술제 (COEX,서울)

2010  서울오픈아트페어 (COEX,서울)

2009  LA Art Show (LA Convention Center,미국)

2008  Asian Contemporary Art Fair (New York,미국)

           한국국제아트페어-표갤러리 (COEX,서울)

2005  화랑미술제 (예술의 전당,서울)

SELECTED AWARDS


2007 제 2회 포스코 스틸아트 공모전 (우수상 수상)

2001 제 1회 청년작가 야외조각 공모전 (우수상 수상)

1998 제1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RESIDENCE PROGRAMME


2005~2006 고양미술스튜디오 입주작가 (국립현대미술관)

2008~2009 장흥 조각 아뜰리에 입주작가 (장흥아트파크)

2010~현재 크라운해태 아뜰리에 입주작가 (아트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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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 EXHIBITIONS


2015    광화문솜사탕 (세종문화회관)

           THE UNIT (신세계갤러리)

           시민청 아트페스티벌 서울놀기 ((서울시청 시민청)

2014   안산 동그라미 예술 프로젝트-꿈꾸는 상상전(안산문화재단.안산)

           12간지 레이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서울)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설봉공원,이천)

2013   탄생-자연과 인간 (양평군립미술관)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태화강둔치,울산)

           두 개의 유토피아전 (예울마루, 여수)

           고양시청갤러리 600 개관전 (고양시청갤러리)

           국립안동대교수작품전 (안동문화예술의전당,안동)

           Stree Furniture 2013 (일산호수공원,고양)

           피렌체전 (피렌체, 이탈리아)

2012   CAYAF 2012 (KINTEX, 고양)

          조형언어-3형3색전 (도시갤러리, 부산)

          창원조각비엔날레 (창원 돝섬)

          고양조각가협회전 (고양 호수공원)

          평화누리에서 만나다 (임진각 평화누리)

          Metal Spirit-금속 (그림손갤러리)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태화강둔치,울산)

          Korean Art Show 2012 (82 Mercer St. Soho, New York)

          HOMA Curator Project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11   THE POWER OF ART (Times Square, Hong Kong)

          서울국제조각페스타 (한가람미술관)

          드림파크전-비밀의 숲 (꿈의숲아트센터)

          신년묘책 (신세계갤러리)

2010  테크놀로지의 명상-철의 연금술 (포항시립미술관)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공간미술프로젝트 (고양문화재단)

          DEFENSE MECHANISM (Gallery TN, 베이징)

          뒤샹의 변기에 대한 오마쥬 (Gallery ROYAL)

          아트밸리 2010 STORY (아트밸리)

          이미지의 복화술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2009 Transformation in Art:변신 (사비나미술관)

          출판도시와 마주치다전 (갤러리 지지향)

          18 MASTER-PIECE (Nefspace)

          성남야외조각축제 (율동공원야외조각전시장)

          미술과 놀이展 - 아트 in 슈퍼스타 (한가람미술관)

          아트가든-리크리에이션 (세종문화회관)

          “PARTNER" (Kring)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특별전 (이천종합운동장)

          서울현대조각전 (노원구청)

2008 New & Now (gallery NOW)

          Creative Mind (사비나미술관)

          우리의 미술문화, 우리의 얼굴 (목암미술관)

2007 한,중,일 현대미술제 (노원구청)

           New Type Contemporary Museum in School (명지외고)

          “잼잇는 전시” (모로갤러리, 미술공간現)

           It Takes Two to Tango (금호미술관)

           명화의 재구성 (사비나미술관)

           MIYAZAKI 국제현대조각전 (MIYAZAKI Airport, 일본)

2006 "상상혼합”박용식,신치현 2인전 (한전아트센타)

          신한 Private Gallery Bank 초대전 (신한 Private Bank)

          젊은 콜렉터를 위한 아티스트전 (홈플러스갤러리, 마산)

          파주 현대작가전 (갤러리희원, 헤이리)

          cutting edge (가나아트갤러리)

          헤이리 PAN fastival (진아트갤러리, 헤이리)

          GOLD & WISE 아트페어 (이촌 PB센터)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open studio 'sub'전 (고양스튜디오)



2006   서울미술대전-구상조각 (서울시립미술관)

             Practisculpture (가인갤러리)

             MIYAZAKI 국제현대조각전 (MIYAZAKI Airport, 일본)

             EHS Project 2006 (세종문화회관)

             “잼잇는 전시” 모로갤러리 기획초대전 (모로갤러리)

             CUBE space 개관1주년 기념전 (CUBE space)

              Without Boundary (표갤러리, 베이징)

2005   더 뉴게이트 이스트 개관기념전 (더 뉴게이트 이스트)

             성남아트센터 개관기념전 “내안의 블루” (성남아트센터)

             미술과 놀이展 (한가람미술관. 어울림미술관)

             미술과 수학의 교감 (사비나미술관)

             MIYAZAKI 국제현대조각전 (MIYAZAKI Airport, 일본)

             포트폴리오 2005 (서울시립미술관)

             30cm전 (CUBE space)

             한국현대조각회전 (제비울미술관, 과천)

2004    New Space, New Sight (국립극장)

             open studio 365 (파주)

             Wind Art Festival (바람공원,제주)

             한국현대조각의 단면전 (진해시 문화의거리)

              D.M.Z ART FESTIVAL "한국설치미술전” (석장리미술관)

2003    통일염원조각전 (도라산국제역사)

              한국청년작가 초대전 (일산호수공원)

              한국의 누드 미학 2003전 (세종문화회관)

              벽돌로부터의 확장 (인사동 문화마당)

2002     ART & FASHION (인천,광주신세계갤러리)

              제34회 군산종합예술제 (군산시민문화회관)

2001     제1회 청년작가 야외조각전 (도자기엑스포 조각공원)

2000    엘리트 조각전 (윙갤러리)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인간과 성’(광주비엔날레 교육흥보관)

              바꿔전 (이정희갤러리)

              청년작가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통일 2000전 (국회의사당)

1999      제1회 2000 공장미술제 (이천공장)

              제2회 모란조각대상전 (모란미술관)

              한국현대조각초대전 (춘천 MBC)

              버스전-Demonstration (성곡미술관)

              아트 앤 아트웨어 (국립현대미술관,과천)

               공원속의 미술과 사람 & 이벤트 (여의도 시민공원)

1998       킴스아울렛 열린미술제 1998 (아울렛 서현점)

                共鳴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97       가칭 300개의 공간전 (서남미술관,담갤러리)

               서울올림픽 9주년기념 조각그룹초대전 (올림픽 공원)

               신치현,윤두진 2인전 (조성희화랑)

1996       Vague (갤러리 2020)

1995        집단정신전 (덕원갤러리)

                공간의 반란전 (서울시립미술관)

                시멘트와 미술의 만남전 (성곡미술관)

                청색구조전-Imitation & Rotation (덕원미술관)

                교육과 자아 (Space SADI)

1994        신촌-때,곳,등장인물 (바탕골미술관)

                청색구조전 (바탕골미술관)

                신촌-일상의 생태학 (관훈미술관)

지각과 존재의 역설 조경진 (철학박사 수료)


기존의 신치현의 작업들을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그가 이번 전시회에서 내놓은 작품들에서 기존 작업들과의 양식적 연속성이나 방법적 일관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작업들이 주로 해상도가 낮은 도시 전광판이나 광학 디스플레이에서 볼 수 있었던 디지털 이미지를 3차원으로 전사시키는 방식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표면의 패턴을 통해 형상과 볼륨을 정의하는 한편, 조각 방법에 있어서도 판형들의 집적이 아닌 투조기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조각적 문제의식, 세계와 존재를 보고 경험하는 방식, 그리고 삶의 근본적 물음 등에서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자신의 조각들을 통해 문제 삼고 있는 것들은 지각된 이미지와 실재로 존재하는 것, 존재를 구성하는 것과 그러한 구성요소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실체적 형상(Eidos, Form) 간의 불일치, 혹은 역설이다. 그의 작업들은 바로 이 역설을 해소하기 위한 여정의 결과물들이다. 그의 조각들에서는 하나의 실체가 다른 실체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오랜 존재론적 원리, 즉 절대성의 원리라는 것은 거부당한다. 그의 조각에서 존재들에 불변적 고정성을 부여하는 실체적 형상들은 단지 지각자의 특정 관점과 위치에서만 존재하거나 패턴적 표면, 혹은 지각적 외양이나 윤곽으로서만 규정될 수 있을 뿐, 내부의 형이상학적 지지체를 함축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의 본성은 지각 너머의, 즉 지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자체나 이데아적 형상과 같은 초월적 실체가 아니라, 지각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지각과 마찬가지로 잠재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존재의 본성, 혹은 존재자의 존재방식을 형이상학적 실체나 본질이 아닌 지각적 사실들로 환원하려는 그의 조각적 시도는 지각과 존재에 대한 두 가지의 관습적 오해, 즉 지각은 하나의 수동적 수용활동이며 따라서 표상적이라는 전제와 지각 너머나 혹은 사물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것, 즉 실체에 대한 일루전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지각과 존재에 관한 잘못된 이해를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그가 기존의 작업들에서 택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도입부에서 말한 것처럼, 판형(板形)들의 외연적 집적의 방법이다. 관객은 신치현의 조각들이 판형들의 우연적 집적에 의한 만들어진 것임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내적 구조라는 것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로부터 어떤 다른 것의 개입도 없이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내적 실체를 가정하는 일은 차단당한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바로 앞이나 뒤의 형태로부터 직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는 논리적으로 투명하며 텅 비어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 형태는 2002년의 「얼굴」에서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는 2009년의 <Error>展에서 선보였던 것으로서 인간의 부분 대상, 즉 얼굴, 팔과 다리 등이 타조, 악어, 사슴 등과 같은 전체로서의 동물형상을 구성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 조각들은 얼핏 데페이즈망의 기법과 언캐니의 감정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적인 것으로 읽힐 수 있겠으나, 신치현의 것은 부분대상들의 이종적 결합에서 오는 무의식적 느낌을 활성화시키려고 했다기보다는 요소로서의 부분대상과 그것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가정되는 실체적 형상(Eidos)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역설의 느낌을 더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소박한 존재론적 가정들에 비춰보면 사실상 이 조각들은 전시 제목 그대로 에러다. 형상 안에 형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가지는 형상에 관한 관습적 오해를 제거한다. 다시 말해 형상의 동일성은 단지 외형적인 것 일뿐, 그 내적 구조는 비동일성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며, 어떤 존재를 바로 그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서 형상이 불변의 이데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잠재적이며 유동적이고, 이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작품들에서도 판형집적기법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서 내적 실체로서의 형상의 관념이 차단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편, 지각의 문제에 있어서 그는 기존의 수동적이고 재현적 지각 관념 대신에 잠재적인 것들을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능동적으로 현실화하는 생성활동으로 규정한다. 신치현에게 지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유보적이며 잠재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서 절대적 관람의 지점이나 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며, 지각의 대상으로서 그의 조각들에서 대상의 객관적 확실성이나 형상적 불변성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Walking Man-p4」(2010)를 볼 때, 만약 우리가 어떤 특정한 재현적 관점에서 머물고자 한다면, 형상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에 서서 그 조각을 보면 되는 것이고, 또 우리의 망막적 인상의 구조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가장 가까이서 보거나 작품 표면 그 자체가 되어 보면 된다. 또 어떤 시점에서는 모듈적 판형들의 미니멀적 관계가 드러날 것이며, 또 어떤 시점에서는 추상적 이미지가 드러날 것이다. 만약 더 멀리서 본다면, 그것은 자코메티의 형상으로도 드러날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관점이나 위치에 있고, 또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들은 그때마다 다르게 현실화된다. 그의 조각에서 하나의 동일한 형상(무엇)을 발견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보고자 원했기 때문이지, 본래적으로 그것이 그러한 대상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존재는 지각에 의존하게 되고, 지각은 잠재적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고 생성하는 활동이 된다. 이렇게 될 때, 지각과 존재는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동시적으로 생성될 수 있게 된다. 신치현이 존재를 지각으로 환원하고자 한다고 했을 때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투조기법을 취하고 있는 그의 근작들 역시 기존 작업들을 관류하는 문제의식과 접근방식에서 이해가능하다. 기존의 작업들에서 존재의 내적 실체나 형상은 외형적인 것으로 치환되었으며, 사실상 제거되었었다. 기존의 판형집적기법에서 내적 실체는 판들의 집적에 의해 논리적으로 투명하고 텅빈 것이 되었다면, 금번의 작업들에서 형상은 투조패턴에 의해 실질적으로 텅빈 구조로 제시되며, 단지 평면적 패턴들이 만드는 공간에 의해 부정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동일성(사람, 동물의 형상)이 비동일성(숲과 잎패턴)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2009년의 <Error>전에서 보인 바 있었던 존재에 관한 접근 방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지각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작업에서 고정된 객체에 대한 재현으로서의 지각을 문제 삼았다면, 이번 작품들은 형태심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지각적 전제로 삼고 있는 형태와 배경의 문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지각적 사실을 통한 존재의 재해석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형태심리학에 따르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동일성을 가진 하나의 형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대상을 배경과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형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외의 것이 배경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치현이 보기에 이것 역시 지각을 표상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잘못되게 가정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배경은 불변하는 형상 뒤에서 형상과 분리되어 그것을 두드러지게 하는 패턴적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를 적극적으로 생성시키는 힘을 가진 잠재성의 지대이다. 형상은 항상 형상이고, 배경은 항상 배경인 것이 아니라, 형상과 배경은 사실상 하나이며, 모두 잠재성의 지대에 속하지만, 우리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순간 배경이 형상으로 현실화될 뿐이다. 얼핏 이번 작품들은 단순히 위장(camouflage)의 개념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숲이나 숲의 잎패턴으로서의 배경과 사람내지 동물의 형상의 관계를 역전시켜서 배경이 형상을 정의하도록 만든 것이다. 실제 그의 조각에서 배경은 패턴적 표면으로 주어지고, 이에 의해 존재의 내적 실체는 완전히 지각적 표면으로 환원된다. 이렇게 되면 존재는 고스란히 지각으로 환원되고, 그 때 지각이란 배경 속에서 고정된 형상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잠재적 배경에 한정성의 형식을 부여해 현실화시키는 활동이 되는 것이다. 이번 작품들 역시 존재의 존재방식을 지각활동으로 일원화하려 파악하려고 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신치현에게 지각은 외부의 대상을 내적 이미지로서 복제하는 활동이 아니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와중에 있는 활동이며 무엇인가를 존재시키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그에게 지각활동은 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것이 함께 생성되는 활동이며,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고, 미결정적인 것이 구체적으로 결정화되는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근작들을 비롯한 그의 전 조각들은 지각한다는 것, 혹은 더 특수하게 봄의 활동을 통해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연금술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Ⅰ. 신치현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가상의 세계다. 그가 만들어 낸 사슴, 코끼리, 타조, 토끼, 악어 등 동물을 닮은 형상들이 실은 인체의 부분들을 조합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관람객은 그의 번뜩이는 상상력과 재치, 아이디어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유심히 그의 작품을 살펴본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어렸을 적 손가락을 이용하여 개나 주전자와 같은 형상을 벽에 비춰보던 그림자놀이와 유사한 것임을 알고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이처럼 신치현의 조각은 ‘이미지의 연금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령, 그의 <거미>는 여덟 개의 사람의 다리가 모여 거미의 다리를 이루고 있으며, 몸통은 목을 서로 맞댄 두 개의 두상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사슴>은 쫙 펼친 두 손이 뿔을 대신하고 있으며, 토르소 반신상이 사슴의 얼굴이요, 그 위에 얹힌 불룩한 유방이 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악어>는 또 어떤가. 쩍 벌어진 입은 두 손이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요, 목덜미는 봉긋하게 솟은 여인의 유방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토르소가 대신하고 있고, 십여 개에 달하는 봉분의 형상을 달고 있는 몸통의 옆에는 네 개의 사람의 다리가 붙어있어 악어의 날렵한 몸을 받치고 있다. 이 모두가 신치현의 기민한 상상력이 낳은 산물들이다.


합성수지로 만든 이 작품들은 모두 매끈한 피부를 가진 것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그것은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적 이미지의 느낌을 충실하게 전달해 준다. 마치 매끈한 피부를 지닌 마네킹처럼 그가 만들어낸 동물의 이미지들은 사실감을 결하고 있다.


신치현의 이런 작업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컴퓨터가 주도하는 가상의 시대적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디지털 시대만의 독특하고도 고유한 미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조각은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모니터를 통해 생성되는 수많은 가상의 이미지들의 표면”을 닮고 있으며, 그러한 표면이란 실은 “숫자 데이터에 의해 조작된 미세한 색 점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앞에서 비유를 든 ‘이미지의 연금술’이란 사실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작가의 역할을 가리킨다. 즉 아날로그 시대의 조각가들이 돌이나 청동, 쇠, 나무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대상을 묘사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조각가들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질적으로 전혀 다른 ‘괴물들’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는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지적하고 싶다.

그 차이란 실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조각가는 자연의 유기적 형태, 즉 엄격한 비례에 입각한 자연의 신비를 거스르면서까지 컴퓨터의 모니터라고 하는 상상의 밀실에서 사물의 고유한 형태를 ‘연금술적’으로 변질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신치현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형태의 사물들은 바로 이처럼 컴퓨터가 주도하는 환경 하에서 가능한 것이며, 그것은 새로운 창작환경, 곧 불가능이란 없어 보이는 이미지 합성의 시대적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Ⅱ. 매끄러운 피부의 표면이 특징인 근작 이전에 신치현은 일정한 모듈에 의한 단위(unit)의 집적이 이루어낸 집합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곧 일정한 굵기를 지닌 아크릴이나 우드락, 각목 등 판재의 집적에 의한 사물의 형상화가 주된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컴퓨터의 모니터 상에서 정교한 스캐닝에 따른 일련의 프로세싱을 거쳐 고안되며, 최종적으로는 오프라인 상에서 구체적인 판재를 통해 성형되기에 이른다. 그가 기왕에 만들어낸 얼굴, 북한산, 비너스, 여인상 등등은 일정한 모듈에 의한 단위의 집적체로서 기계적인 반복의 집적품들이다. 이 반복의 미학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물과 유사한 이미지를 낳을 뿐, 현실감을 결함으로써 지극히 인공적인, 따라서 기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컴퓨터가 지배하는 디지털 미학의 산물인 한에 있어서 새로운 미술의 가치와 규범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그 한계는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가란 늘 새로운 환경에 접하여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나아가서는 환경 그 자체를 지배하는데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에 있어서 실험이란 곧 기술과의 싸움이기도 한 것이며, 기술과의 연대 혹은 제휴이기도 한 것이다. 신치현의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당대의 기술 환경에서 조각의 개념을 확장하고 전환해 나가는 쪽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에 신치현이 시도하는 <거미>나 <타조>와 같은 작업은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기술의 시대에 조각의 개념적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인체의 부분을 이용하여 거미나 타조와 같은 동물의 형상을 만든 근작들은 기계적인 조합의 미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사이버 상에서 스캐닝에 의해 정교하게 재단된 이미지의 프로세싱이 오프라인에서 판재로 옮겨져 절단된 겹들의 집합의 산물이다. 그것은 우연이 개입할 수 없는 측정의 결과요, 계획의 결과물이다.


신치현의 상상력에 기인한, 동물이기도 하면서 인체이기도 한 이 시각적 이율배반은 곧 시각적 트릭을 통한 이미지 놀이의 원천이다. 그것은 벽에 비친 손의 그림자가 개나 주전자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인체의 부분인 동시에 거미나 사슴으로 보이게 하는 시각적 트릭의 근원이다. 맞잡은 두 손의 엄지손가락이 개의 귀가 되고 벌어진 두 손가락이 입이 되는 그림자놀이에서, 손에 주목하면 손으로 보이고 벽에 비친 그림자에 주목하면 개로 보이는 이 시각적 트릭의 이율배반이야말로 신치현의 조각을 관류하는 개념적 컨셉트의 요체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형태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연상, 그리고 그에 따른 지각적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그 근원이 다름 아닌 ‘이미지의 연금술’임을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녀들의 폼을 성찰하는 폼 김준기 (미술비평)


디지털 픽셀 이미지를 입체조각 작품으로 만드는 신치현의 작업은 ‘픽셀 조각’으로 불린다. 전자적으로 부호화한 시각이미지의 세계를 그리드의 입체버전인 육면체의 연쇄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만들고 평면을 입체로 만듦으로써,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만들고 애매한 것을 확연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그의 픽셀 조각은 부분의 원소들 자체로는 형상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의 결합체가 가지는 형상화 능력은 훨씬 더 강렬하게 본질을 드러낸다. 픽셀 조각은 선적인 요소로만 보자면 이등변사각형과 수직선의 연쇄로 이루어져있으며, 입방체로 읽어내자면 긴 사각기둥의 연쇄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픽셀 조각으로 만들어진 대상은 본래의 지시기능을 상실하면서 동시에 대상의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하게 한다.

신치현의 신작들은 우리를 둘러싼 대중매체가 발산해 내는 저 꽉 찬듯하면서도 공허한 ‘천국의 미소’들과 저 현란한 듯하면서도 앙상한 ‘폼’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동시대 문화현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한다. <천국의 미소> 연작은 대중매체에 노출된 그녀들이 특정한 형태로 안면근육을 고착화 하고 있는 현상을 포착한 픽셀부조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웃고 있는 그녀들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가식적인 표정으로 미소를 물신화하는 대중문화의 메신저들이다. 미소 물신을 포착한 그의 픽셀 조각은 메타이미지이면서 실재에 대한 이미지이다. 신치현의 픽셀 조각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실재의 그녀들에 대한 재현이 아니라 그녀들이 모델로 등장하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를 재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메타이미지인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더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가 만든 이미지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라는 실재를 끌어들여 자신의 어법으로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인 비평의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폼> 연작은 세 가지 포즈로 물신화한 그녀들을 제시한다. 짝다리를 짚고 서서 한 손은 허리에 얹고 한 손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그녀는 식상하다 못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각진 덩어리로 관객 앞에 서있다. 레이싱걸들이 주로 사용하는 한쪽 다리를 올린 채 상체를 뒤로 재끼고 구조물 위에 올라탄 그녀도 건조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리를 벌리고 무릎 꿇어 앉은 채 두 손을 허벅지에 대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 또한 만만찮다. 신치현의 근작들은 픽셀 조각이라는 폼으로 읽어낸 그녀들의 폼에 대한 비판적 성찰 그것이다. 그녀들의 폼은 픽셀 조각 특유의 직각형태들로 인해 앙상한 폼만을 남긴다. 그의 픽셀 조각은 스킨을 제거해버린 채 뼈대만을 남긴 앙상한 구조체 그 자체이다. 신치현의 신작 픽셀 조각들이 더욱 각별하게 의미작용을 강화하는 것은 본질적인 구조를 드러내는 조형방법의 특성 그 자체와 더불어 동시대의 문화지표를 끌어들이려는 예술가 주체의 성찰적 자세 때문일 것이다.